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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한국이 키운다는 대형 투자은행(IB)은?

by 핀비즈 2019. 10. 24.

[NIE] 한국이 키운다는 대형 투자은행(IB)은?

투자은행은 말 그대로 `투자 백화점`…돈을 벌려고 하는 모든 업무 다하죠
한국, 수익구조ㆍ덩치 선진국에 수십년 뒤져
헤지펀드에 자금 빌려주고 관리 전담하는 `프라임 브로커` 허용 등 정부도 적극지원

  • 설진훈 기자
  • 입력 : 2011.07.01 17:06:51   수정 : 2011.07.01 19:03:35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고 했다.

2009년 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손잡고 각고의 노력 끝에 따낸 초대형 아랍에미리트(UAE) 원전플랜트 사업 이면에는 말 못할 아픔이 있다.

UAE 정부는 총 20조원 규모 공사를 발주하면서 전 세계 자산 규모 50위 이내 대형은행 보증서를 요구했다. 금융위기 같은 돌발변수가 생겨도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든든한 돈줄`을 함께 데려오라는 얘기였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내에는 이런 자격과 덩치를 갖춘 금융회사가 한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힘을 빌려야 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올해 초 취임 일성으로 "대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해 세계적 비즈니스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IB란 무엇인가

= 한마디로 은행 보험 등은 특화 상품을 파는 전문점, IB는 온갖 잡동사니를 취급하는 백화점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은행은 고객들에게서 돈을 받는 수신 기능이 있는 반면 IB는 그런 기능이 없어 쌓아놓은 자기자본이나 회사채 발행, 차입금 등으로 투자 밑천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은 망해도 일정 한도에서 고객 돈을 예금보험공사 등 정부가 메워주지만, 고객이 주식을 사기 위해 맡겨놓은 예탁금을 제외하고 IB가 파는 유가증권은 원칙적으로 예금 보장이 안 된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은행은 `저위험ㆍ저수익` 예금을, IB는 `고위험ㆍ고수익` 유가증권을 파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은행이라고 하면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예금을 받는 금융회사를 떠올린다. 좀 더 엄밀하게 미국 등 서구식 기준으로 보면 이런 곳은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 등이 대표적으로 상업은행에서 출발한 회사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고객 예금을 받아서 좀 더 비싼 금리에 대출해 주는 게 주업이다. 이 같은 금리 차이를 `예대마진`이라고 부르는데 은행 수익의 80~90%를 차지하는 밥줄이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이보다 하는 일이 훨씬 많고 개념도 복잡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증권사의 기업금융ㆍ자기자본 투자 파트를 주축으로 하면서 은행 보험사의 비슷한 부서들까지 합쳐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현재로서는 IB만 전담하는 금융회사는 우리나라에 없는 셈이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메릴린치, CS, UBS, 노무라 등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IB들이다.

업무 영역이 하도 다양하고 점점 진화하다 보니 요즘에는 `IB가 돈을 벌려고 하는 모든 업무`라고 아예 속 편하게 정의하고 넘어가는 전문가들도 많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가 펴낸 금융사전에는 `IB란 유가증권을 발행해 장기자금을 조달하려는 자금 수요자(주로 기업)와 자금 공급자인 투자자를 연결해 주는, 소위 중개 기능을 주 업무로 하는 증권 인수업자(Underwriting house)를 말한다`고 돼 있다.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유상증자 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려고 할 때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주면서 수수료를 챙기는 업을 말한다.

유가증권을 사고팔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흥정을 붙이는 일종의 `거간꾼`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기업 인수ㆍ합병(M&A) 등 덩치가 큰 딜을 할 때는 중개뿐만 아니라 직접 자기 돈을 태워 과감하게 베팅하기도 한다. 경영에 참가하기보다는 주로 나중에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서다. 여기까지가 전통적인 개념의 IB다.

하지만 요즘에는 △프라임 브로커 △고객주식 자체 중개(내부 주문 집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거액 대출 △자회사 통한 헤지펀드 운용 등 새로운 영역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

= 미국 증권사들이 고객 주식 주문을 받으면서 챙기는 이른바 `위탁수수료` 수입으로 전성기를 누린 게 1970년대였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고정 위탁수수료율 제도가 폐지된 이후 업체 간 수수료율 인하 경쟁이 벌어지면서 주 수익원에서 멀어져갔다. 이때부터 증권사들이 파생상품 개발이나 기업 인수ㆍ합병(M&A) 중개, 프라임 브로커 육성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IB 파트가 서서히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아직 IB라기보다 주식 중개(브로커리지) 회사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지 모른다. 2010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기준으로 국내 62개 증권사가 벌어들인 총수익 가운데 위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달한다. 브로커리지 비중이 60~70%를 웃돌았던 10여 년 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20% 안팎인 미국 등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다. 반면 IB 부문 수익 비중은 대형 증권사가 기껏해야 15% 안팎이고, 소형사는 5% 수준에 불과하다.

증권사 자기 돈으로 채권이나 주식을 사고팔아 남기는 이익 등 트레이딩 분야까지 합쳐 넓은 의미의 IB파트를 모두 합쳐도 45%를 넘는 곳이 거의 없다.

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본부장은 "기업 정부 유동화회사 등에서 좋은 유가증권을 떼다 고객들에게 팔아 수익을 남겨주는 게 IB 주업무"라며 "이런 고객들이 결국 주식 매매도 하므로 IB파트 기능이 당장 눈에 보이는 수치보다는 훨씬 많다"고 말했다.

어쨌든 수익구조나 덩치 면에서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선진국 IB에 비해 30년 이상 뒤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3월 결산 기준으로 대우증권(2조8606억원) 삼성증권(2조8016억원) 현대증권(2조6893억원) 우리투자증권(2조6287억원) 한국투자증권(2조4205억원) 등 우리나라 대형 증권사들 자기자본은 2조원대 중반을 겨우 넘는다. 일본 노무라에 비해 8분의 1, 중국 중신증권에 비해 4분의 1에 불과하다.

덩치를 따지는 총자산 기준으로는 미국 주요 IB 대비 1.6%, 직원 수는 5.9% 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동네축구 수준인 셈이다.

◆ 정부 "대형 IB 키우겠다"

= 고객들 주식 위탁수수료나 받아서 장사하는 증권업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도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세계적 투자은행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대형 IB를 키워야 한다고 보고 몇 가지 `영양분`을 준비하고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춘 증권사에는 몇 가지 IB업무를 신규 허용해 주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다. 아직 논의 중이나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 등에 자격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프라임 브로커는 헤지펀드를 위한 `종합 도우미` 또는 `주거래은행`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말로 `전담 중개업자`라 부른다.

헤지펀드 등 전문 투자자를 위해 자산 보관ㆍ관리, 청산ㆍ결제, 증권ㆍ자금 대여 등은 물론 사무실 임대, 펀드 기준가나 원장 관리 같은 허드렛일도 도맡아 한다.

무엇보다 헤지펀드에 투자금을 빌려주는 게 가장 큰 업무다. IB가 조달한 금리에 통상 1~2%포인트를 얹어서 빌려주는 식으로 돈을 번다. 헤지펀드가 제 값어치보다 비싸게 형성돼 있는 주식을 공매도 하려고 할 때 일정 수수료를 받고 그 주식을 빌려다 주는 것도 프라임 브로커 몫이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4년까지 국내 헤지펀드 시장 규모가 42조원 선까지 커지면 프라임 브로커들은 4% 선인 2조원을 해마다 벌어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IB파트에서는 선진국 IB들과 달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데다 국내 영업에 국한돼 마진율이 훨씬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형 증권사 임원은 "초기엔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넘기 어렵고, 프라임 브로커에게 떨어지는 마진율도 1% 선에 그칠 것"이라며 "시장 규모가 연 1000억원 선에 불과해 대형사 5곳만 진출해도 포화 상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대형 IB에는 △기업대출 허용 △NCR(영업용 순자본 비율) 규제 완화 △비상장 주식 중개(내부주문집행) △외환거래 업무 확대 등 몇 가지 혜택을 더 줄 계획이다. 솔직히 이런 조치에도 수년 안에 `한국판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IB가 출현한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일 것 같다. 그렇지만 일단 `씨`라도 뿌려 둔다는 뜻에서 업계는 꽤 기대를 걸고 있다.

[증권부 = 설진훈 부장 대우]